계원조형예술대학/ 미술비평 유 진 상

한국에서 미디어아트라는 분야가 처해있는 여러 가지 정황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첫 번째로 예술가들이 기술을 다루는 방식의 수준에 대한 것이다. 그 이유는 실질적으로 동시대가 제공할 뿐 아니라 제시를 요구하는 기술적 진전의 결과들을 자신의 작업내용으로 다루는 작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미디어아트는 그런 의미에서 비디오아트, 플래시아트, 센서 기반의 아트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기술적 역량을 확보한 작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기술의 데모가 아닌 기술이 서사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김태은의 경우는 이러한 상황에서 매우 특이한 동시에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스스로 획득한 기술적 도구들을 작가 자신의 서사에 응용(customizing)하는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몇몇 작품들은 개념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의 발전과정이 최근 몇 년 간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점도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점이다. 2000년에 서남미술관에서 전시한 <시각적 봉입장치>가 단순한 매직랜턴 장치를 기호의 디스플레이로 사용했던 작업이며 2001년의 가 2채널 동영상을 통해 문명의 전개방식을 다양한 그래픽으로 서술하려고 시도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초기에는 작가의 관심사와 기술적 도구들의 연결이 상당히 개념적이지만 도식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술기반미술의 어려운 점은 바로 이런 것으로 기술적 적용의 시간에 비해 서사가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문제가 항상 제기된다. 2003년의 <포이즌>은 단채널 비디오 작품처럼 보이는데, 미술관의 벽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점으로부터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고 넓어지는 환영을 그래픽과 편집을 이용해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김태은의 작업에 대한 상당히 흥미로운 이해의 발단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바로 시각적 ‘이야기’를 꾸려가는 방식에 있어 미적 체험의 다양한 참조들, 특히 미술사의 다양한 참조들이 서사의 바탕에 놓인다는 점이다. 마치 부르넬레스키의 무한한 공간적 증식을 보는 듯한 감정이 이 작품 속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2004년의 과 2005년의 에서도 나타나는데, Max MSP 기반의 레이저 컨트롤을 이용해 아크릴 블록 위에 붉은 색 사과 드로잉을 투사하는 작업인 에서 김태은은 기계적으로 무한히 재생되는 사과의 참조를 통해 대상을 그리는 행위의 범주적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는 그것보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서 다소 심리적인 요소를 끌어들이고 있지만 여전히 얼굴의 표면과 그것에 오버랩 되는 이미지로서의 ‘표정’을 동영상 퍼포먼스의 형식으로 다룸으로써 인물화의 유형에 대한 일별(一瞥)을 하고 있다. 2005년에 제작된 는 본격적인 양방향(Interactive) 작업들로서, 기술적으로 상당히 안정적이고 세부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그래픽의 적용에 있어 국내작가들이 이제까지 보여주지 못한 매우 정교한 준비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김태은의 작업들에게 발견되는 문제들을 몇 가지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은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 첫 번째는 서사가 단속적이라는 점이다. 즉 작품과 작품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부재하다는 이유 때문에 자칫 작품들이 일화적(episodic) 소모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커다란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그의 작품세계가 동시대미술로 진입하는데 어려움을 제기한다. 두 번째는 마찬가지로 작품의 개념들이 지나치게 예시적이라는 점이다. 기술적 동원에 비해 작품의 저항이 약한 부분은 자칫 작품이 일종의 데모로 이해될 수 있다는 식으로 간주된다. 세 번째는 작품의 유형이 한국에서는 희소성을 띨지 모르지만 미디어아트의 글로벌한 공간에서는 이미 전형적인 것들이라는 점이다.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으로서 김태은의 작업이 지향하는 평가영역이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김태은에게 기대가 되는 것은 그가 사실상 해결의 도구들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데에 있다.

2006. 12월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작가 워크샵에서 발표되었던 글 내용입니다.